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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가끔은, 그냥… 우리 시대의 마음은 부사로 말한다 최고관리자 / 2025.12.08

 

[죽음학자 임병식의 도닥거림] 가끔은, 그냥… 우리 시대의 마음은 부사로 말한다

 

가끔은 말이 아니라, 말 앞에서 망설이는 그 표정이 더 크게 들릴 때가 있다. 요즘 사람들의 언어를 듣고 있으면, 문장의 중심이 아니라 그 앞이나 끝에 붙은 “가끔은, 그냥, 어쩐지…” 같은 부사에서 더 깊은 울림이 난다. 마치 진짜 속마음은 명사나 서술어가 아니라, 설명하지 않고도 슬픔을 전할 수 있는 미완의 단어들 속에 숨어 있는 듯하다.

 

누군가는 “잘 지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앞에 “사실은…”이 붙는 순간, 그 문장은 전혀 다른 기색을 띠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지만, 마음속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말의 중심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말의 가장자리에서는 분명히 고백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상실의 시대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사랑을,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상실을 정면에서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힘들다”고 하지 않고 “그냥 좀 그래요”라고 말한다. “외롭다”고 하지 않고 “가끔 허해요”라고 말한다. “눈물이 난다”는 대신 “어쩐지 요즘 마음이 이상해요”라고 말한다. 부사는 감정을 감추는 장막이 아니라, 감정이 더는 감당되지 않을 때 흘러나오는 숨 같은 것이다.

 

나는 이 부사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멈춘다. 저 말은 문법으로는 해석되지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인간의 체온이 실려 있다. “가끔은”이라는 말 뒤에는, 자주이지만 도저히 온전히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숨어 있고, “그냥”이라는 말 뒤에는, 설명해봤자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붙어 있다. 그리고 “어쩐지”라는 말은,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슬픔, 즉 애도의 미완 상태를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가 “그냥 그래요”라고 말할 때, 그 ‘그냥’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니라, 고백의 문 앞에서 멈춘 사람의 마지막 언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하고 말을 멈춘 이에게 “왜요?”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 자리에서 멈추어도 괜찮아요.”

이해가 아니라, 동행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문장을 완성하는 법보다, 문장이 멈춘 사람 곁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할지 모른다. 인간은 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말과 말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명사보다 부사가, 설명보다 한숨이, 주장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니 오늘도 누군가가 조용히 “가끔은…” 하고 말을 열면, 서둘러 묻거나 다그치지 말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인간은 단정한 진술이 아니라, 흔들리는 부사로 마음을 건너는 존재라는 것을.

 

가끔은, 그냥…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살리고 있다.

 

임병식
기사입력 2025-10-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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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철학박사.의학박사

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학 교수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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